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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세이_젠더규범이 낳은 불안과 혐오를 넘어2019-02-14 23: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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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서교연_페미학교_기말에세이_2.14.(ㅁㅎ).hwp (77.5KB)


2019.2.15.서교연_페미학교_에세이_문화

 

젠더 규범이 낳은 불안과 혐오를 넘어 자기만의 방으로

-박완서의 장편 소설 서 있는 여자읽기


1. 들어가며

이 글은 박완서의 장편소설 서 있는 여자(1985)를 통해 당대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과 그 속에서 자유를 협상하는 여성의 시도가 지니는 의미를 밝히는 글이다. 주인공 연지는 어머니 세대가 생각하는 여성의 삶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방식으로 결혼생활을 꾸리는 것으로 자신의 자율성을 실천하고자 한다. 하지만 결혼 후 그녀는 남녀동등을 내세우면서 두 사람이 지키기로 한 역할 분담을 실천하는 일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이때의 불안은 젠더 규범의 속박으로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여자다움’, ‘남자다움이라는 규범과 충돌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불안은 스스로 강조한 결혼생활의 규칙들을 수행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처음의 계획으로부터 후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녀가 자율성을 추구할 때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어머니의 여자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해 갖는 그녀의 거리두기는 단순히 어머니 식의 여성적인 외모 가꾸기에 대한 거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육체에 대한 공포나 혐오의 감정으로까지 나타난다. 이러한 대목은 여성의 자율성의 추구가 어째서 어머니 혹은 여성에 대한 혐오의 성격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는 결코 여성인물의 개인적인 결함이라 할 수 없는 것으로 그녀가 자란 오이디푸스 가족 모델과 무관하지 않다. 오이디푸스 가족에서 부부는 가정 내에서 동등하지 않으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성역할에 대해서도 차별적으로 가르친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닮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부정적 동일시를 하며 동시에 아버지를 선망하게 된다. 작품 내에서 연지의 시선은 바로 그녀가 문제시했던 불평등한 가정을 지배하는 차별적 규범이 생산해 내는 여성 혐오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그녀는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하고 욕설을(‘화냥년’(270))을 듣고 이혼녀라는 이름을 얻은 후에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이는 여성의 자율성 추구의 어려움이 현실로 드러난 것으로, 아내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를 잃어야 하고, 만약 그녀가 가 되려 한다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적절한 이름을 잃어야만 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먼저 1)독자적 삶을 선언하면서도 불안을 느끼는 연지의 모습을 통해 젠더 규범의 다층성을 밝힌다. 이어서, 2)여성의 자율성 추구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적 성격을 밝힌다. 딸 연지의 어머니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기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연지가 부정적 예로 삼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오이디푸스 가족모델의 구조화된 산물로, 그녀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봉합하려는 아버지-남편의 공모 역시 이 가족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이름을 잃고 자기만의 방을 얻는 연지의 행동을 통해 협상의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박완서(1931~2011)나목(1970)으로 등단한 이래 근 40여년 동안 한국전쟁과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공고해진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공모가 낳은 여성 억압과 배제의 현실을 소설로 드러내었다. 특히 박완서는 1980살아있는 날의 시작을 발표한 이후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 여성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지지를 얻었다. 특히 1980년은 한국사회에서 또 하나의 문화, 여성, 여성운동과 문학등의 잡지가 발간되었고 여성문학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생산되는 시기였다. 80년대에 발표한 그의 작품들은 당대의 요구와 기대 속에서 발표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문학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독해하는 것은 당대의 여성문제에 대해 재인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의 문제에 대해 소설이라는 형식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80년대에 발표한 박완서의 소설에 대한 논의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 서 있는 여자에 대한 논평이다. 이 작품은 80년대에 쓰인 박완서의 여성문제에 대한 다른 고발소설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았는데 주로 문제로 거론되는 것이 연지라는 여성인물에 대해서다. 또 하나의 문화여성두 그룹 모두 서 있는 여자의 여성 인물이 당대가 요구하는 주체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의 비평을 하고 있다. 조혜정은 박완서가 아직 온전히 바로 선 여성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서 있는 여자휘청거리는 오후등을 예로 들고 있다. 물론 조혜정은 현재의 상황이 그만큼 억압적임을 뜻한 것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박완서를 리얼리스트라고 평하면서도, 여성운동이 여성 특유의 능력을 발견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고 이에 부합하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박완서의 인물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감추지 않는다. 여성역시 마찬가지이다. 연지가 여성문제 인식에 대해 불철저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며 박완서의 여성문제에 대해 천착하려는 태도가 사회구조적 원리에 대한 성찰을 결여하고 중산층적 시각의 한계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소설이 이상을 선언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때, 단순히 여성 해방을 위한 주체 혹은 모델을 찾는 방식만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오히려 서 있는 여자의 인물이 자율성을 추구하려는 과정에서 모순을 보인다면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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