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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주차 쪽글] 국가가 살아남으려면 2019-04-05 15: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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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류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아나키 혁명은 페미니즘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동일노동 동일임금’, ‘배우자공제 폐지’, ‘3호피보험자제도등을 통해서 일본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또는 어느 국가에서도 노동자 여성에게 평등한 임금을 제공하지 않고자 한다면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마음이 다 같아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여성이 결단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국가가 스스로 변하거나 또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고용의 유연성과 부분노동의 비정규직화라는 바퀴를 굴리며 나아간다.

존에 있던 커다란 남성중심의 파이는 그대로 두고 닥쳐오는 경기의 불안정성을 비정규직 여성이 떠맡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여성은 가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안정적인 임금을 보장받은 남성 부양자가 있기 때문에 여성의 임금을 낮추는 나름의 합리적인(인정할 수 없는) 임금모델과 사회적 인식

그리고 정책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분석은 우에노 지즈코의 책이 다루고 있는 일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그녀가 곁들여 부분적으로 언급했다시피 이는 한국에서의 성평등 상황과 유사한 전개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에서 성평등이라는 국제적인 약속이 어떻게 왜곡되어 실현되었는지를 추적했다.

이 추적 과정 속에서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남성중심 사회라는 일본의 가부장제적이고 (천황제적) 구조이다.

이 구조는 여성의 능력을 가둬두는 국가의 시스템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특히 지즈코가 정확히 말했던 젠더 트레킹’(6)이라는 교육에 있어서의 성차별은 애초에 여성이 여성으로 자라게 만드는

젠더의 이데올로기로까지 작용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도록 요구받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무균실에 있는 것처럼 외부로부터의 도전이나 내부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가족 모델을 통해 여성은 무능한 것처럼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가족 모델이 유지되었다.

지금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고령화 사회는 가족 모델을 통해 해답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일본이라는 사회에는 다양성이라는 것이 끼어들 틈이 없도록 쇄국해왔기에 장래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 모델이 계속해서 요구된다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지금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도)은 변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이성애적 가족 모델을 버리는 과감한 인식적인 변혁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자라게 하고 남성을 남성으로 자라게 하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반성을 담아 기존의 인식을 폐기하려고 해야 한다.

국민을 여성과 남성으로만 그리고 이성애적 결혼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만 셈하는 방식을 벗어나야만 하고 그래야만 한다.

그럴 때에야만 임금과 노동이 평등해질 수 있다.

인간을 성숙한 개인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정책은 젠더의 이분법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야 겨우 국가에게 미래라는 것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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