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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주차 쪽글] 왜 항상 큰 일은 여자가 하나2019-04-05 11: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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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박미옥, 챕터하우스, 2018. 6~12.

 

전반부에 이어 후반부에서도 우에노 지즈코 선생님은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관계의 액체화를 이중의 방향에서 다루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형상대로 페미니즘을 생산한다. 고용 유연화와 노동 유연화라는 힘 겨루기 속에서 여성이 생존할 방책을 알려준다.

 

6노력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가츠마 대 가야마에서는 성장 모델을 가진 적이 없는 여성들에게 있어 기회균등과 우승열패라는 신자유주의 경쟁 선별 원칙이 개인들에게 내면화되어 여성 간 격차를 용인하게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주제는 오랜 심리학의 대상이었지만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심리학의 주요 주제인 적이 없었다. 여성학에서조차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탐구한 연구들이 드물다. 사회적으로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조건, 그리고 균등법의 제정으로 부모의 딸에 대한 기대와 투자가 높아졌다. 젠더 격차를 지우고 표면상의 평등을 보여주는 균등법은 여성 노동자가 자기 커리어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모두 자신에게서 찾도록 왜곡하여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노력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통념을 대변하는 가츠마와 노력으로 망가진 사람들을 대변하는 가야마 사이의 대결 구도는 이와 같은 조건 위에서의 여성 간 격차를 반영한다. 노동시장과 결혼시장 모두에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딸들의 부담은 가중 된다. 여성 마케이누는 이러한 구도 위에서 호명된 여성패자이다.

7경쟁에서 패한 남성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는 여성 패자와 달리 공개적으로 이슈화되지 않는 남성 패자, 즉 남성 마케이누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한다. 남녀 성비를 따지자면 여성 마케이누보다 남성 마케이누가 더 많은 수를 이룰 것이라고 한다. 결혼 부양이 필요 없는 비혼 여성들의 증가로 현대에 이르러 전원 결혼 사회는 끝났다. 두 다른 성의 마케이누들의 생활 방식과 그것을 이슈화하는 미디어의 태도도 다르다. 여성의 경우, 자산이 있거나 부모의 집에서 생활하며 가정주부가 딸린 남자 같은 생활을 한다. 여성 마케이누에게는 이중의 관심이 쏠린다. 싸움에서 진 개에 대한 희화화와 함께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생활자의 모델로 여기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에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사회가 관리해야 하는 보편적 문제로 드러낸다. 여기에 결혼대기로 간주되는 비혼 여성이나 전업주부는 포함되지 않는다. 남성들은 돌봄을 받는 성으로 할당되고 길러지는 까닭에 독신 고령 남성의 사회적 고립도는 여성들에 비해 현저히 높다. 노후에는 여러 곤란에 처하게 된다. 경제력이 약해지고, 가사능력 및 자신과 가족을 케어하는 능력이 없고, 소통 능력도 부족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 삶에서 풀기 어려운 여러 난관들에 부딪친다. 이들의 불만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관리되는지 8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8누가 여성혐오를 부추기는가에서는 신자유주의 환경 속에서 젠더 평등 정책의 결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남성 간 격차의 원인이라는 비틀린 현실 인식이 어떻게 여성혐오로 생산되는지 분석한다. 주요 활동가는 남성 마케이누들과 그들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들이다. 신자유주의와 내셔널리즘의 기묘한 공모가 이들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남성 패자들은 남자처럼 유능한 여성을 공격하며 페미니즘을 타깃으로 삼는다. 그러나 실제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상황을 야기한 세계사적 맥락을 파악해보거나 일본적 상황을 만든 정,,재계 복합권력에 저항하기보다는 약자를 공격한다. 여성공격의 추동자들에는 세 종류가 있다. 인터넷 우익이라 불리는 무직(프리터 포함)의 청년 남성들, 신구 반동파 언론인, 풀뿌리 보수와 보수 정치가들. 이들의 성격은 모두 다르지만 여성공격으로 연합전선을 형성한다. 이 연합전선은 성, 인종, 민족에 대한 차별의식을 공유하며, 공공의식과 국제감각이 결여되어 있고, 자신들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소수파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 활동 방식도 다양하다.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시민운동을 벤치마킹한다. 인테넷 강자로서 뉴미디어를 사용한다. 여성공격의 전면에 여성을 앞세워 여적여 구도를 생산한다. 이러한 여성공격의 역사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사회의 커다란 변동이 있을 때마다, 사회 내부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에 대한 공격이 있어왔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여성은 어떤 권리를 획득했는가? 그것도 터무니 없이 획득한 것인가? 신자유주의는 페미니즘을 옹호하며 여성에게 이득을 주었는가?

9신자유주의는 여성에게 득인가 독인가에서는 위의 질문에 답을 준다. 답은 역시나 두 개의 방향을 지시한다. 노동의 유연화가 다양한 삶의 선택지를 여성에게 주었다는 점에서는 이득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의 여성에게 정규직을 열어주고 나머지 여성에게 불리한 노동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여성 간 격차를 가져왔다. 자기결정과 자기책임 하에 경쟁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쟁 원리를 내면화한 상태에서 고용 관계의 구조적 불평등을 문제 삼기보다는 승자와 패자로 자신들을 스스로 분배한다. 이리하여 평등의 이름으로 계쟁을 확립할 정치 집단화의 가능성이 봉쇄되는 것은 독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형상대로 페미니즘을 잘라낸다. 신자유주의는 세계사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 정,,재계의 전략이었다. 그와 같은 사회적 변동에 의해 페미니즘은 역사적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부상은 미완의 혁명이라 일컬어진다. 남녀 역할에 대한 근대사회의 규범을 손상시켰지만 완전하지 못하고 어설픈 상태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국책 페미니즘 혹은 일장기 페미니즘은 그 예라 하겠다.

지금까지 정치적 부문에서 격차의 문제를 살펴보았다면 10성차별은 합리적인가에서는 경제학의 영역에서 젠더 격차를 다룬다. 노동 붕괴의 범인은 신자유주의 생산 관계의 세계화와 성차별이다. 여성은 가계 보조 노동력이라는 근대 가족의 신화가 파트 노동이라는 기혼 여성을 위한 노동 방식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런데 정말로 기업은 성차별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가? 젠더격차라는 경제학 저서가 여기에 답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게임 참여자를 합리적 의사결정자로 가정하고 차별형 기업과 평등형 기업을 비교함으로써 일본적 고용제도가 여성의 사회 진출 및 활동을 방해한다는 것과 경영이 효율적인 회사에는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여성에 불리한 조건이 적은 평등형 기업이 매출에서 영업이익률이 높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차별적 기업을 평등형 기업으로의 이행하도록 만들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왜냐하면 두 개 유형의 기업들은 그 조건 속에서 합리적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경쟁이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차별형 기업은 다양성이 부족하여 내부적으로 다양한 자원을 가지고 외부에 대응할 수 있는 평등형 기업에 비해 불리하다고 결론 내린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평등형 기업으로 지원하면 되는 것인가? 이것이 여성 노동자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젠더격차의 해법은 두 가지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첫째, 가정에서의 성별분업과 일본적 고용제도의 상관관계를 경제 외적 변수로 보아 논외 대상으로 제외한 것은, 젠더 문제에서의 핵심인 공정성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며, 둘째, 차별형 기업과 평등형 기업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는 모두 신자유주의 경제 관계 안에서의 선택지로서 사용자 일방에 끌려가는 노동 유연화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현실에 약자가 적응할 것을 요구하는 것 외 다른 것이 아니라고 갈파한다. 그렇다면 성차별이 합리적인지 합리적이지 않은지 라는 문제 설정은 오히려 문제 자체를 가리는 방식이 되지 않는가? 11신자유주의 덫에서는 젠더격차의 가설을 문제 삼는다. “여성은 차별받는다. 왜냐하면 퇴직을 빨리 하기 때문이다.”는 가설은 한편 학문적으로 투철하지 않다. 이것은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가져와서 설정한 것이다. 여성 차별 분석을 위해 퇴직률을 최대 유일 변수로 설정하는 것은 일본 기업의 현 상황을 변경불가능한 조건으로 전제한다. 환원논리로서 현실을 한 번 더 긍정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다른 한편, 퇴직을 빨리하는 것이 공동체나 그 구성원 모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분야가 있다. 연구직이 그렇다. 그런데 모든 여자사람이 연구직일 수는 없다. 그리고 연구직에서도 성차별은 존재한다. 출산퇴직을 선택하지 않고 돌아오는 여성 노동자들인 워킹맘들은 어떤 롤 모델을 가지고 있을까? 배려이자 차별인 마미트랙과 대디트랙은(그러나 두 트랙에 대한 차별과 배려의 정도는 질적으로 다르다) 승자가 되는 코스에서의 일탈이다. 복귀해서 전력투구하여 승자가 되면 차별이 사라지고 모두에게 공정한 게임이 되는 것일까? 저자는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여성으로 할당되는 사람들에게 대안은 무엇인가? 그들이 삶을 헤쳐 나갈 때에 빛이 되어줄 롤 모델이 무엇인가? 더 많은 종합직, 관리직을 점하는 것일까? 남성처럼 똑같이 일하면 인생에서 승자가 되는 것일까?

이와 같은 고민에서 12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는 시작한다. 먼저 여학생들에게 조언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젊은이에 그들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젠더 격차가 이미 현실적으로 현저하게 큰 데 그들을 하나로 묶어서 말한다는 것은, 약자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열성 커리어를 쌓을 것인지 해피 커리어를 쌓을 것인지 양자택일의 방법도 종합직에 지원할 것인지 일반직에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다시 말하기다. 그렇다면 여성학계에서는 어떤 대안을 여성들에게 혹은 여성이라는 위치에 할당 되는 사람들에게 생존전략을 전해주는가? 에비하라의 조언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에비하라는 세 가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만혼하거나 출산을 최대한 늦추기. 둘째,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남자를 만나기. 셋째, 단선적 역사 진보를 믿어보자. 저자는 이 세 가지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비현실적이라 지적한다. 첫째 조언은 출산 이후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며, 실제 일반직의 변종인 비정규직의 많은 여성들이 기혼의 유자녀 여성임을 감안하면 문제 설정 자체가 빗나간 점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조언은 사회나 아내가 일을 희생하는 남자를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셋째 조언은 같은 30년간 세계사의 조류 속에 속해 있던 일본이 다른 선진국의 발전 방향과 반대 방향을 향해 왔던 경험이 이미 30년 간 누적된 상태를 돌아본다면 젠더 평등이라는 역사적 진보를 낙관할 수 어렵다는 점에서 해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어느 학문 부문이나 현실적인 운동 영역에서도 여성인 사람에게 대안이 되는 롤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세 가지 수준에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국가 수준, 기업 수준, 개인 수준. 국가 수준에서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운용되는 노동 유연화를 말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위험성을 감안하여 임금을 더 주어야 하며 동시에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기업 수준에서는 일본적 고용관행을 폐지하고 기업 조직 안에서의 다이버시티 확보에 주력하라고 말한다. ‘여성은 가장 가까운 이문화이다. 사적 수준에서 여성에게는 현실적으로 두 가지 전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결혼 전략과 노동 전략. 고용 유연화와 노동 유연화의 힘 겨루기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한 개인이나 조직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말고 정신적 의지처나 자신의 아이덴티티, 그리고 수입원을 다양화 하여 삶의 리스크를 분산하라고 말한다. 탈근대 시대의 삶의 방식은 탈전문이자 멀티플의 시대이다.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삶에 올라탈 때, 다시 그 위로 올라설 것을 권한다. 자유의 방향은 엎치락뒤치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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