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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성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만나는가(1주차 쪽글 뒤늦게 제출합니다...)2019-03-31 14: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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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선정적으로 지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ㅜㅠ

선정적으로(?) 지으려다 보니 너무 거창한 것 같아서 뻘쭘합니다; 만

아무튼 늦게나마 제출합니다... 

(공지를 제대로 안 봤습니다 ㅠㅠ)




우에노 지즈코,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쪽글

 

 

이 책만으로 일본에 신자유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입됐는지, 그것이 한국에 도입된 신자유주의와 어떤 면이 같고 어떤 면이 다른지 읽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몇 가지 공통적인 궤적이 눈에 띈다. 1985년 남녀고용기회 균등법 제정, UN 여성차별철폐조약 비준 등 신자유주의 정권은 …… 남녀공동참여 정책과도 친화적이라는 점, 신자유주의가 도입됨에 따라 파견법이 개정되는 등 전면적인 노동 유연화가 이루어졌다는 점, 비혼율 증가 및 출산율 저하 등 재생산 관련 이슈에서도 공통점이 드러난다(이러한 공통점이 한국-일본 사이에만 존재하는지 아니면 전 세계적인 현상인지는 알지 못한다).


한국 역시 UN 여성차별철폐조약에 비준했고,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했으며, IMF 이후 노동 유연화를 이루었다.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이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 중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것은 198712월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는 점, 1980년대에 민우회 등 여성단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 1987년에 6월 항쟁-노동자대투쟁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여성운동/노동운동의 결과물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에 따라 성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1980년대는 한국에서 급격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기 2년 전(1985), 국무총리 산하 여성정책심의회는 여성발전기본계획남녀차별개선지침을 내놓았다. ‘발전이라는 단어가 함의하고 있는바, 남녀고용평등법은 단순히 고용상의 성차별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발전 계획에 여성을 끌어들이려는, 요컨대 여성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이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옮겨 가는 동안, 1960년대에 9.7%에 머물렀던 여성 서비스직 노동자는 1990년대에 이르면 17.8%로 늘어난다(1960년대에 70.5%를 차지했던 농림수산업 여성 노동자는 1990년대에 21.5%로 크게 낮아지며, 사무직은 0.5%에서 16%, 판매직은 9.7%에서 17.7%로 상승한다). 이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출산한 여성에 대한 무급 휴직제(1)가 포함되어 있었고, 같은 해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 조항은 현행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출산 전후의 60일 휴가가 너무 짧아 2세 양육의 측면에서는 충분치 못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 또 출산 여성의 휴직 후 복직 의무화는 남자의 군 복무 후 복직 의무화 규정과 같은 것으로 풀이됐다(1987225). 요컨대 고용에서의 평등을 제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에게만 재생산 노동에 관련한 책임을 지우는 움직임이 한 법안 안에 있었다. ‘발전이라는 단어는 1995년에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4년 전부개정되어 양성평등기본법이 된 이 법안은 남녀평등 촉진,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영유아 보호시설 확충, 저소득 모자가정 보호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평등은 2000년대 들어서까지도 발전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흔히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1997년 이후로 설명된다. 일본은 이보다 조금 앞선다.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이후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지즈코가 1985년에 제정된 남녀고용기회 균등법과 UN 여성차별철폐조약 비준을 언급하면서 책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이 책에서는 일본이 아닌 세계, 이를테면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고, 일본 역시 그 바람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흔히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고 가정되는 신자유주의에서, 실은 자본과 결합된 국가가 지대한 역할을 했음을 설명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혹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어떻게 신자유주의의 이해와 맞아 떨어졌는가를 설명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야망 보지 프로젝트 같은 일련의 노력들이 한편으로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 특징으로 언급되는) 자기계발 담론 안에 포섭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그와는 정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해와 맞아 떨어지는 것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여성의 차이를 부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종종 여성적인 것을 일정한 틀에 가두는 결과를 빚기도 했던 것처럼.


어쨌든 발전을 추구하는 자리에 국가가 놓여 있느냐, 자본이 놓여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겠지만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하고, 다만 거듭해서 반복되는 동일한 수사를 발견할 수는 있다. 여성은 경제활동에 활발히 참여함으로써 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할 노동력인 한편으로("신자유주의 개혁이 젠더 평등정책을 추진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여성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성 일자리를 앗아가는 장애물이었다(종합직과 일반직 사이의 간극). 때문에 여성들은 산업역군으로서 여공인 동시에 정숙하지 못한 여성이었으며, 커리어우먼인 동시에 된장녀였다. 여성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은 ·가족 양립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남녀고용평등법은 현재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족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중적인 자리다.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추진된 정책은 유연 근무제/시간제 일자리 도입이었고, 이런 정책들은 (노동시간은 적을지 몰라도) 임시적이고도 저임금인 일자리들을 내밀면서 특히 경력 단절 여성(혹은 주부)을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전업주부라는 모델이 비교적 굳건하게 남아 있었던 데 반해, 한국에서는 남성이 생계부양자로서 가족 구성원들을 충분히 부양할 만큼 넉넉한 임금을 받았는지 다소 불분명하게 여겨진다. IMF 외환위기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해고됐다면, 그건 거꾸로 여성 노동자들이 이미 상당수 존재했다는 말로 들린다. 남성이 가족 구성원들을 부양하기에 충분치 않은 임금을 버는 동안 여성이 가내노동으로 혹은 집밖에서의 노동으로 돈을 벌어 생계비용을 충당하는 동시에 재생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던 상황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족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다시금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들은 언제나 남성 및 혼인 관계를 통해서만 정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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