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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9주차 쪽글] 서사의 양식으로 드러낸 억압의 교차 양상2019-05-24 18: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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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양식으로 드러낸 억압의 교차 양상

 

단감


도로시 앨리슨의 <계급의 문제>(1994)는 여러 억압과 차별이 중첩되어 있는 한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교차성의 의의를 고찰한 글이다. 이는 차별 소송을 중심으로 억압과 차별이 교차하는 양상을 사회 구조와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한 크렌쇼의 <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1989)와 좋은 쌍을 이루며 교차성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로를 보여준다.


이 글은 이론에 근거하여 사태를 분석하는 형식 대신 한 사람의 삶을 서사의 형식으로 서술한다. 앨리슨은 이를 우선 주류의 논리로 세계를 보는 관점을 소수자의 관점으로 바꿀 수 있는 기제라고 역설한다. (“내가 산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그런 세상이 있는 믿음을 믿게 만드는 것도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1)) 그리고 이를 통해 이론이 포착하지 못하는 억압의 기제, 즉 감정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절망 같은 것은 절대로 충분하게 분석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절망은 직접 살아봐야 하는 것이다.”(1~2))

 

앨리슨은 이론으로 규정되는 질서는 주류 집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소수자 집단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바람직하고 단일한 정체성을 구조적으로 구획하고 규정하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에 따른 정체성을 구현하지 못할 때에는 소수자 집단에서조차 배제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명료한 질서에 따른 억압 구조의 구획과 그와 함께 구성되는 소수자 정체성의 구획은 가령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근대적 이분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공동체에서는 활동과 성적 욕망의 분리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앨리슨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성적 욕망을 활동가 정체성으로부터 분리하고 치유하려 하지만 이것이 곧 자기 자신을 삶 전체에서 소외시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게 단순한 분리가 아니라 산산조각이 나는 것임을 꿈에도 알지 못했던 나는 삶의 모든 부분을 순수한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면서 보냈다.”(2), “나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칸칸이 나눠놨던지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질문조차 던지지 않을 정도였다.”(11))


이렇게 구획된 질서에 따른 단일명료한 정체성의 강요는 그것에 맞지 않는 사람을 경멸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스스로도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동료들을 경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수자들조차 모범적 소수자의 신화를 완수하지 못한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을 경멸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떤 소수성을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온 힘을 다해 분리하고 은폐하며 억압한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가지 소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자신이 겪고 있는 억압의 진상임에도 그 억압을 정확히 대면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며 쉽게 한 가지 억압을 설명하는 질서에 자신의 문제를 억지로 맞춰버린다.


그러나 앨리슨은 이러한 단일 질서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강제 혹은 유혹에 끝내 굴하지 않고 한 사람이 동시에 지니고 있는 여러 억압이 만들어내는 다층적 배제 및 차별의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계급, 젠더, 성적 기호, 민족, 인종, 종교이 한 사람에 삶에 동시에 끼치는 차별의 양상을 경멸하지 않고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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