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7주차 쪽글] 『관용』 2장 요약문(수정)2019-05-10 19:18:39
작성자

관용2. 관용: 권력의 담론요약문

 

   웬디 브라운은 관용2(관용: 권력의 담론)에서 오늘날의 관용 담론, , 귀속적 정체성을 담지하는 개인에 대한 관용의 형성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실제적인 종속과 불평등의 문제를 은폐/재생산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브라운의 분석은 일견 중립적으로 보이는 관용이라는 용어에 내포된 권력관계와 그 효과를 구체적으로 들춰내는 작업이기에, 계보학, 규율권력, 통치성 등 푸코 권력 이론의 주요 개념들을 참조하면서 전개되고 있다. 브라운은 계보학의 방법론과 푸코의 권력 이론에 대한 직접 인용을 통해, 오늘날 관용 담론의 형태와 효과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브라운은 우선, (존 로크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적 관용 모델과 초공동체주의적 관용 모델의 관계를 중심으로 담론적 실천으로서의 관용의 계보를 파악한다.

   “통치의 원리로서의 관용”(66)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에 처음 등장했으나, 자유주의적 관용 모델의 본격적 정식화는 로크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종교를 정치, 공적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고 그것이 철저히 도덕적 자율성에 기초한 개인의 선택의 문제임을 주장했다. 바꿔 말해 로크는, “공동체 내의 다양한 믿음들은, 이제 그 믿음이 어떤 공적 중요성도 없음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관용의 대상이 될 수”(69) 있게끔 한 것이다. 다른 한편 초공동체주의적 관용 모델은, 다른 종파의 믿음에 대한 관용의 형태로 절대적 원리들의 충돌에 대처할 필요성”(71) 때문에 등장한다. 이는 종교 공동체 간 공존이나(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 공동체의 예시), 지배집단의 하위공동체에 대한 승인(16세기 말에서 19세기 유럽 국가들의 소수 종교 공동체 통치 예시)의 방식으로 나타났다.

   브라운은 (특히 20세기에) 후자의 모델이 전자의 모델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다고 밝히지만, “최근 들어 개인보다는 집단에 기반한 관용 개념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72)한 것에 주목한다. 이러한 일종의 재전환은 일면 개인의 선택을 뛰어넘는 개인의 인종적-문화적-성적 속성에 적용되는 관용이, (스스로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는) 자율적 개인 개념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관용을 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종교적 믿음에 대한 관용에서 정체성에 대한 관용으로 관용의 대상과 장소가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변화는 단순히 관용 대상과 범위의 변화를 뜻하지 않는다. 양자는 그 작동 메커니즘과 여타 개념과 맺는 관계의 측면에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자는 개인의 선택에 대한 관용이나, 후자는 주체에 본질적인 것 따라서 변화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관용이다. 각각이 (자유주의적) 평등 개념과 맺는 관계도 상이하다. 전자의 관용은 서구 국민국가의 수립 이후 국가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하는 시민권 부여 등의 정책으로서 (보편적) 평등과 (등치되지는 않지만)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자의 관용은 자유주의적 평등 개념이, 예컨대 현실화되기 힘든, 다만 형식적인 것으로만 인식될 위기를 맞을 때 그 한계를 은폐하기 위한 대리보충으로 기능한다.

관용 실천의 근거가 법률적 토대에서 탈피하여 보다 담론적인 차원에서 확보되는 것 역시 이러한 변화를, 믿음에 대한 관용으로부터 정체성에 대한 관용으로의 관용 담론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브라운은 이러한 변화가, 즉 앞서 언급한 (집단에 기반한 관용으로의) ‘재전환의 결과로서 정체성에 대한 관용이, 초공동체주의적 관용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양자는 집단에 기반한다는 차원에서는 유사하나, 브라운은 오늘날의 정체성에 대한 관용을 특정한 집단에 귀속된 개인에 대한 관용”(72)으로 정식화함으로써 그것이 단순히 공동체 간에 이뤄지는 서로의 종교적 믿음에 대한 관용과는 구분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브라운이 생각하는 오늘날의 관용 모델, ‘귀속적 정체성을 가진 개인에 대한 관용은 어떻게 구성되며, 그 효과는 무엇인가?

 

   푸코의 근대 주체 형성 이론을 참조하여 그 구성 과정이 분석되는, ‘귀속적 정체성을 담지하는 개인에 대한 관용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차이로서의 정체성을 본질화/물화하여 그 구성성을 은폐함으로써 실질적인 종속과 불평등의 문제를 탈정치화하고, 또한 (정체성이라는 범주의) 규제적 효과와 지배적인 비표지된 정체성의 헤게모니를 강화”(88)한다.

   앞서 밝혔듯이 로크에 의해 제시된 자유주의적 관용 모델은 종교, 믿음, 신념을 공적인 진리의 위치에서 끌어내린다. 이 때, 공동의 믿음 구조에 기반한 공동체가 정치적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축소되며, 그 자리는 이제 기술적이고 실용적인”(70) 정치 이해가,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적 태도”(80)에 기초한 수사적으로 전략적인 정치적 주장들이 채우게 된다. 공적 공간에 부적절한 것으로 된 도덕적 진리의 위상은 대신, 하위공동체가 담지하는 국지적 진리들에 부여된다. 관용은 이로 인한 하위공동체 간 상호 적대가 진리의 재정치화”(79)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다. 다시 말해, 관용은 개별 공동체 간 갈등이 정치의(공공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도덕적 상대주의를 이 영역에서 유지한다.

   브라운은 도덕적-종교적 진리의 상이함으로 인한 집단 간 적대를 사사화하는 관용과, 오늘날의 귀속적 정체성에 대한 관용을 푸코의 근대 주체 형성에 관한 이론을 통해 잇는다. 성의 역사 1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근대 규율 권력으로서의 생명권력이 주체의 믿음과 행동을 주체의 내밀한 진리”(81)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개인들에게서 수집, 분류, 탐구되어 형성된 인간에 관한 지식이,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이 주체의 진리를 규정/규제한다. 근대 주체 형성에 관한 푸코의 이 이론에 따르면, “오늘날 표지된 정체성(들이-인용자) 특정한 믿음-행동-경험을 만들어 내는 어떤 핵심적 진리의 산물로 간주”(83)되는 것은, 주체의 믿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주체 내면의) ‘진리의 자리에 정체성이 놓이기 때문이다. 하위집단 간 적대를 일으키는 상이한 진리는 도덕적-종교적 믿음에 관한 것에서 인종적-종족적-성적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관용은 집단 간 관계의 차원에서 (정체성과 결부된 것으로서의) 인격체 간 관계의 차원으로 이동한 것이다.

   따라서 브라운이 오늘날 집단에 기반한 관용이 다시 전면화되고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정체성에 대한 관용이, 정확히는 개인의 주체성을 집단 정체성의 산물로 환원”(87)함으로써 주체 형성의 전체화효과를 강화하는 귀속적 정체성ascriptive identity”(86)에 대한 관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코의 근대 주체 형성 이론에 의하면, 근대 생명권력으로서의 규율 권력은 주체를 개인화한다. 그리고 규범으로부터 이탈한 주체는 더욱 강력하게 개인화 메커니즘에 종속”(85)되는데, 이 비정상적 개인들은 곧 관용의 대상이다. 이제 오늘날의 관용은 규율 권력의 (주체 형성에 있어서의) 개인화 효과와도, 귀속적 정체성에 대한 관용으로서 전체화 효과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할진대, 현대 관용 담론(귀속적 정체성을 담지하는 개인에 대한 관용)의 역할, 효과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주체의 진리로서의 정체성은 곧 본질로서의 정체성으로, ‘변화 가능성에 닫혀 있기 때문에 관용은 개인의 진리/본질로서의 정체성(,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정체성)에 기반한 집단 간 적대를 사적 영역의 문제로 묶어내고 유지함으로써 무마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러므로 관용 담론의 역할은 집단 간 적대 완화 및 공존 보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믿음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용이 종교적-도덕적 믿음의 차이들을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사사화하여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배제했다면, 귀속적 정체성에 대한 관용은 정체성의 차이들을 불변의 진리/본질로 사사화, 물화하여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배제한다. 귀속적 정체성에 대한 관용은 정체성의 차이(와 그에 기반한 적대)를 탈정치화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차이가 담론적-역사적 구성물임을 그리고 따라서 그 차이를 생산해왔을 권력관계를 은폐하여, 진리를 담지하는 범주로서 본질화된 정체성의 위상을 유지-강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귀속적 정체성에 대한 관용은 정체성의 차이가 본질의 차이로 이해되게끔 하여 그것을 불평등과 지배의 장소로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든다.”(89)

   나아가 비정상적 주체들, ‘관용의 대상으로서의 개인들은 권력의 개인화 메커니즘에 더 강력하게 종속되기 때문에, 표지된 정체성 범주의 규제적 효과(, 권력-위계관계에서 열등한 위치에 놓인 차이의 물화/주변화)는 강화된다. 반대로, 규범에 부합함으로써 비표지된 정체성을 담지하는 관용의 주체는 중립-보편의 위치를 점하고 모든 타자성을 관용의 대상이 되는 이들의 몫으로 떠넘긴다.”(88) 브라운은 현대 관용 담론의 역할과 효과를 이와 같이 분석한 뒤, “공적 질서를 유지하는 선에서 사적인 믿음을 승인하려던 관용의 애초의 목적은 완전히 전도되어, 이제 관용은 공통적인 것 내부에 본질화된 타자성을 각인시키는 하나의 방법”(89)이 되었다고 정리한다.

 

   따라서 브라운은 관용2장에서 1) 개인의 종교적-도덕적 믿음에 대한 관용으로서의 자유주의적 관용 모델과 공동체마다 상이한 종교적-도덕적 믿음에 대한 (공동체 상호적) 관용으로서의 초공동체주의적 관용 모델에 대한 담론적 분석에, 2) 푸코가 이론화한 근대 규율 권력 하의 주체, , 믿음과 행위가 온전히 자기 내면의 진리에 기초해 의미화되는 개별 주체들에 관한 논의를 접합하여, 3) 오늘날의 관용 담론의 형태인 귀속적 정체성을 담지한 개인에 대한 관용의 형성 과정을 밝히고, 4) 그것이 물화된 정체성 범주의 유지를 통해 (정체성 간) 차이를 본질화/탈정치화함으로써 차이 배후의 권력관계를 은폐, 고착화, 강화하는 효과를 가짐을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관용2장의 내용 전체를 가능한 한 유기적으로 재구성하고, 해당 장에서 전개되는 브라운의 논지를 최대한 단선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했다. 관용에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들이 본격적으로 제시/정리되기 시작하는 2장의 내용을 요약했기 때문에, 책 전체의 논지를 이해하는 데 본 요약문이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