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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연구계획서] 정동으로서의 ‘공정’2020-05-18 11: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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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학교4. <몸과 정동> 프로포절. 


제목 : 정동으로서의 ‘공정’


전주희



이 글은 최근 한국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공정’이라는 담론을 정동의 차원에서 다루고자 한다. 지금까지 공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두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불평등의 심화가 특정 세대에 집중되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청년세대 중 남성들의 불안정한 삶을 중심으로 다뤄졌다. 다른 하나는 젠더 불평등에 대한 것으로 주로 여성들의 취업상의 불공정한 이중 잣대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공정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공정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공정을 통해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삶은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안 답을 얻기 위해서는 ‘차별’, ‘불평등’, ‘불공정’이 중층적인 주제들에서 왜 ‘공정’이란 개념이 하나의 대항적인 기호로 채택되었는지, 이러한 ‘공정’의 기호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사용하는 주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공정은 롤즈를 비롯한 ‘정의론’에서 다루던 정치적 개념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공정’은 공정의 개념을 둘러싼 토론과 논쟁보다는 공정함을 둘러싼 분노와 울분의 감정들이 순환하고 있다. 따라서 사라 아메드가 내린 정동에 대한 정의를 따라 불안정한 삶들이라는 조건들 사이에서 순환하는 정동의 차원에서 ‘공정’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더 공정을 이해하는데 적합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공정을 청년세대가 가지는 불안정하고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불만(혹은 저항)의 문제로 접근하기 보다는 ‘지위’의 문제로 접근하고자 하며, 이때 ‘지위’는 계급적, 젠더적, 인종적 교차들을 통해 형성되는 구별에 입각한 집단들을 의미한다. 

공정은 특정 지위가 지향하는 ‘평등’이므로, 평등에 대한 감각을 내부로부터 허물어버리는(undoing) 정동적 충동이다. 따라서 공정은 편파적 평등이라는 역설 안에서 진동하며, 이는 특정 지위 바깥의 존재에 대한 혐오로 전환된다. 즉 자신의 혐오가 정당화되는 방편으로 공정이라는 정동적 차원을 동시에 채택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동의 순환은 젠더적 몸을 순환하며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공정’의 문제에서 청년남성의 신체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때문에(청년의 문제는 청년남성의 몸 이미지로 대표/재현된다.) ‘지위’의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나타나는 반면, 여성의 경우 ‘공정’의 담론에서 배제되거나 이차적으로 주체화되기 때문에, 생물학적 여성의 몸과 그렇지 않은 몸들을 둘러싸고 ‘공정’의 정동이 발생한다.  

특히 이 글은 청년남성의 ‘공정’에 대한 감각이 어떤 대상의 혐오를 재생산하면서 정당화되고 있는지와 더불어 청년여성들이 특히 지지하는 생물학적 여성을 여성주의의 주체로 간주하는 주장들이 이러한 공정-혐오의 정동을 여성이라는 범주와 어떻게 접착시키고 있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참고문헌 

  • 사라 아메드, <행복한 대상>, <정동적 경제>
  • 로렌 벌렌트, <잔혹한 낙관주의>
  • 엘리자베스 그로스 <몸 페미니즘을 향해> 3장 몸 이미지. 
  • 데이비드 흄, <정념에 대하여>
  • 박원익.조윤호, <공정하지 않다>
  • 김보명 외, <경계없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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