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2주차 쪽글] 보편성, 보편적 주체, 그리고 보편성을 비판하는 주체2018-10-12 15:49:01
작성자
첨부파일단감쪽글_버틀러 우연적토대_181012.pdf (179.4KB)

보편성, 보편적 주체, 그리고 보편성을 비판하는 주체


단감


  주디스 버틀러의 우연적 토대(1992)는 개념의 정립과 개념의 비판이라는 행위가 공통적으로 자명한 토대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음을 치밀하게 반성하는 글이다. 토대 자체를 질문하거나 검증하지 않고 개념을 비판하면, 그 개념이 독점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권력을 해체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고 그 권력을 개조하여 연장시키거나 비판자가 그 권력을 대체하는 데 그치게 된다. 즉 자신이 비판하여 끌어내고자 했던 그 권력을 오히려 재생산시키거나 자신이 그대로 답습하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근대 사회의 남성적 주체를 비판하고 해체하고자 하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의식이 된다.


  이 점을 논하기 위해 우연적 토대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보편성’, ‘보편성을 담지하는 주체’, ‘보편성을 비판하는 주체이다. 먼저 보편성은 타자를 근본적으로 보편 구조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전제하는 폭력적 방식을 통해 구축되는 개념으로, 서구 근대성을 비판할 때 주요 타겟이 된다. 그러나 보편성이 배제하던 것들을 포괄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다 해도, 이는 새롭고 심화된 배제를 생산하는 대가로 달성될 수밖에 없기에, 보편성은 영원히 논쟁적, 우연적으로 남아있어야만 한다. 이는 항목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영구적 정치적 논쟁의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p. 5).”


  그러나 이 비판에서 흔히 간과되는 것이 우리가 그 보편성은 자명하지 않은 것임을 비판하면서도 그 보편성을 구축하고 행사하는 주체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주체는 어떤 행동을 하는 기원으로서 이미 주어진, 선험적으로 보증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의 상황에 대항하면서 재가공되고 재구성되어가는 존재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체는 결코 완전히 구성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종속되고 생산되기 때문이다. 그 주체는 근거도 아니고 결과물도 아니며, 다만 특정한 재의미화 과정의 영구적 가능성이다(p. 10).”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긴 나머지 간과하는 개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보편성을 비판하는 주체를 자명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비판하는 입장이라 해도, 나는 비판하는 내용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출발점이 되는 주체는 없(p. 6), 이 비판 주체 역시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그 입장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며 심지어 나를 구성하는 과정을 내가 관장하는 것도 아니다(p. 6).” 동시에 자신이 논쟁을 촉발시키는 순간 그 논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해관계에 연루되어 권력의 분배 경제 속에 놓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렇게 비판하고자 하는 개념의 내용과 그것의 효과뿐만 아니라, 그 개념이 근거하고 있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검증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 토대야말로 권력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며, 권력이 재생산되고 행사되는 원천임을 주목해야 한다는 버틀러의 지적이 현재 한국 페미니즘 운동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 ‘남성적 사회남성 주체를 비판하기 위해 여성 주체를 개념을 확정하는 순간, 그로 인해 배제가 발생하게 되며, 이렇게 배제를 통해 비판 주체를 확립하는 것은, 결국 해체하고자 했던 남성 주체를 재구조화하여 연장시키는 동시에, 여성 주체 역시 폭력적 논리를 답습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여자가 아닌가요?’, ‘뚱뚱한 여자가 멋부리면 추하다는 통념은 여자의 코르셋이 아닌가요?’ 하고 물으며 계속 보편여성의 경계를 의심하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에 꼭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