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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애도할 수 없는 존재_페미학교 3주차 후기_쏠2018-10-25 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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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이번에 가장 꽂힌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애도할 수 없음’, ‘애인의 죽음을 드러내 놓고 슬퍼할 수 없는 게이들얘기를 들으면서 <판타스틱 우먼>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왜 이 영화가 생각났을까. 어쩌면 하나도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써보겠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마리나는 생일날 연인 오를란도를 잃는다. 연인의 죽음을 애도할 겨를도 없이 마리나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살인 용의자로 몰리고, 조의의 말 대신 의심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마리나는 오를란도의 전 부인에게 추모식에서 눈에 안 띄게 있을 테니 장소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당신은 장례식이든 추모식이든 어디에도 올 수 없어. 다니엘(마리나의 과거 이름), 당신이 오면 온 가족이 다 망연자실하고 쇼크 받아요.”

라는 말이 돌아올 뿐이다.

 

만연된 문화적 금지 때문에 특정한 형태의 상실이 강제될 때, 우리는 문화적으로 만연된 우울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우울증은 슬퍼할 수 없고 슬픔의 대상이 될 수 없는ungrieved and ungrievable 동성애 리비도 집중을 내재화한 징조인 셈이다.’(우울증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360p)

 

여기서 내가 이해한 '만연된 문화적 금지'란 동성애 금지이고, 이 때문에 '특정한 형태의 상실'이란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실이다.

마리나의 상실 또한 특정한 형태의 상실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마리나의 상실이 특정한 형태의 상실이 아닌 이유는 뭘까? 마리나는 여성으로서 남성인 오를란도를 사랑했는데 말이다. 마리나는 연인을 잃은 슬픔뿐 아니라 그녀의 존재 자체가 금지되고 거부되고 있다. 마리나는 테이프에 감겨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고, 울렁이는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의 성기 쪽에 놓인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을 바라본다. 마리나는 연인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할 시간을 가지기도 전에 자신의 존재 자체,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마리나의 상실이 특정한 형태의 상실이 아닌 이유는 마리나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애도할 수 없는 존재가 이 영화 속에도 나온다는 생각에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마리나의 슬픔도 동성애 리비도 집중’(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동성에게만 강력한 끌림을 느끼는 것?)으로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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