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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주차 쪽글] 부정된 사랑과 부정된 상실2018-10-19 17: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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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된 사랑과 부정된 상실

단감

 

주디스 버틀러의 우울증적 젠더/거부된 동일시(1997)는 애착 대상의 상실이 우울증적 동일시를 통해 자아에 내면화되어 자아의 일부를 구성하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논의를 바탕으로 동성애의 목적과 대상을 상실시키며 구축되는 이성애 정체성 및 이성애 우울증적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한 글이다. 여기서 버틀러는 상실한 애착 대상을 우울증적으로 동일시하는 심리적 현상이, 동성애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성애를 구축하는 강제적 문화와 결합하여 어떠한 젠더 정체성 및 젠더 구조를 생산해내는가를 부정된 사랑과 부정된 상실이라는 비통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프로이트가 애착 대상의 상실을 경험할 때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멜랑콜리 및 우울증적melancholic 동일시를 분석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멜랑콜리는 완결되지 못한 슬픔의 과정으로, 상실된 대상이 자아 안에서 환상적으로 통합되고 보존되는 동일시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 역할(p. 353)을 하는 심리현상이다. 초기에 프로이트는 멜랑콜리의 대응 개념으로 애착 대상과의 단절에 성공하는 '애도'를 상정했지만, 사실 애착 대상과의 마지막 단절이라는 것은 없다. 단절하기는 커녕 애착 대상과 동일시를 통해 합체된다. 여기서 동일시는 대상을 보존하는 정신적인 형태이자 마술이 되며, 이러한 우울증적 동일시를 통해 대상을 자아의 일부로 보존하여 상실을 완전한 상실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다. 이 상실의 내재화는 정신 속에 상실을 보존하면서 상실을 거부하는 메커니즘이다.(p. 355)


여기서 버틀러는 젠더 정체성 및 젠더 구조가 바로 이 우울증적 동일시를 통해 산출된다고 주장한다. 여성성/남성성의 취득은 동성애 애착의 포기를 강제함으로써, 보다 더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동성애 애착의 가능성을 미리 배제함으로써(p. 356), 가까스로 성취되는 이성애를 통해 이루어진다. , 특정한 성적 애착의 상실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인정되지 않고 슬퍼할 수도 없는 상실을 요구하는 금지를 통해 부분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우울증적 동일시를 통한 젠더 형성은 매우 고유한 구조를 드러낸다. 동성애의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는 이성애 문화로 인해 이 상실은 나는 결코 그를 사랑한 적이 없으며 그러므로 결코 그를 상실한 적도 없다”(p. 360)never-never의 구조를 띠는 것이다. 즉 이 상실의 부정은 미리부터 배제되어 있기에 청산될 수조차 없으므로 발생하는 부정이다. 이 구조를 설명하며 버틀러는 슬퍼할 수도 없고 슬픔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상실에 대한 프로이트의 사고와, 동성애 애착의 상실을 슬퍼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화를 살아가는 곤궁한 삶과 삶 사이를 생산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입장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p. 359).


이 구조를 통해 두 가지 이성애 사회의 양상을 비판할 수 있다. 첫째는 이성애 정체성(이성애 주체)이 동성애를 부정/폐제하면서 우울증적으로 획득되는 과정을 밝히며, 그 사회적 언어가 가진 규제 및 정상화의 힘을 침식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그로 인해 실제로 발화되지 못한 상실이 있음을 공론화하고 정치화하는 것이다. 슬픔에 대한 집단적인 제도화의 출현은 생존에 핵심적인 것이며, 지역사회를 재집합시키고, 친족을 재천명하며, 관계를 다시 얽어나가도록 하는데 핵심적이다.(p. 370)


이를 통해 우리는 동일시를 통해 구축되는 주체의 위치라는 임의적으로 봉쇄된 영역을 반성하는 데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는 게이/레즈비언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에도 이성애와의 구성적 관계를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방법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성애의 부인은 이성애에 그릇된 단일한 위상을 부여하고 이성애차별주의가 진행시킨 상호배제의 원리를 반박하지 못하게 하면서 주체의 영역을 유지시킬 뿐이기 때문이다.(p.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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