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제목2주차 복습2018-10-19 17:30:02작성자jj*완벽히는 아니지만 이해한 내용만큼 정리해서 올립니다~ (준택)개념들-재현(representation) : 원본(present)을 다시-나타낸다(re-present)는 것이다. 개인을 ‘여성’과 ‘남성’, 사회적 관계를 ‘여성과 남성의 관계’로 나타내는 의미부여체계(재현체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부여체계를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섹스/젠더 체계라고 칭한다. (즉, 재현은 의미부여, 재현체계는 의미부여체계)-재현대상(실재 대상) : 재현되는 대상-재현물 : 재현의 생산물-재현체계 : 재현대상(실재 대상)을 재현물로 만드는 의미부여체계. 일종의 재현하는 권력자, 권력체계.-이데올로기 : 특정한 주장을 공인된 지식으로 생산하고 합법화하는 논리나 체계. 즉, 재현물을 생산하는 일종의 재현체계.-개인 :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주체(subject) : 사회적 관계 속의 개인-개인과 주체의 관계 : 개인이 사회적 질서에 종속되었을(be subjected to) 때 주체(subject). 사회적 룰과 규범에 종속되었을 때만 주체로서 기능한다.-페미니즘적 주체 : 젠더 이데올로기의 안팎에 동시에 존재하며, 자신의 그런 상태임을, 그 나뉘어짐(두 겹의 시선)을 인지하는 주체-젠더의 해체 : 잉여(excess)의 지점이 있다는 것은, 다른 자기재현을 통해 기존의 사회적 재현이 해체될 가능성을 내포한다.-스페이스 오프 : 감독이 강조함으로써 후경처리된 것(스페이스 오프된 것, 가부장제에서 후경처리된 것)을 읽어내자는 것. -테크놀로지 : 젠더를 재현하고 구성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과학적 기술(예>영화)드 로레티스 <젠더의 테크놀로지>저자는 ‘성적 차이(들)’개념의 한계(1.페미니즘적 사유를 보편적인 ‘남성’과 ‘여성’의 차이라는 개념틀에 가두고, 2.주체를 오직 (인종, 계급 등의 차원은 배제하고)성적차이로만 구성한다는 점)를 지적하며, 성적 차이와 인접하지 않은 젠더 개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젠더에 대한 4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는 “젠더는 재현이다.” 젠더가 사회적 관계를 ‘여성’과 ‘남성’의 관계로 다시-나타낸다(re-present)는 것이다. 두 번째 명제, “젠더의 구성은 젠더재현의 결과물인 동시에 과정이다.” 사회적 관계를 ‘여성’과 ‘남성’의 관계로 인식하게 만드는 의미부여체계(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이를 ‘섹스-젠더 체계’라고 부른다)가 있는데, 이를 개인이 다시-취하고(re-present), 이것이 살아가는 과정 내내 반복되면서, 젠더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음 명제로 넘어가기 위해서 저자는 알튀세르가 논의한 ‘이데올로기와 주체의 관계성’을 빌려오는 동시에 수정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에 작용하여, 개인을 주체로 만든다. 그런데 주체화 과정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를 통해서가 아닌 개인의 실천이 담보되어야 한다. 개인의 반복적인 수행을 매개로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두 번째 명제에서 언급했듯이 젠더의 구성이 젠더 재현의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행위성(주체의 실천)을 저자는 강조한다. 행위성에 따라 재현을 (사회적) 재현(젠더가 부과되는 것)과 자기재현(자기 안에서 반복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러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명제를, “젠더의 구성은 (사회적) 재현과 자기재현 모두의 산물이자 과정이다.”로 변경한다. 더 나아가,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적 주체는 이데올로기 내부에 존재하면서 이데올로기의 외부에 있다고 착각하는 존재이다. 반면, 페미니즘적 주체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안팎에 존재하며, 안팎에 존재함과 그 나뉘어짐을 인지하는 존재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페미니즘 영화비평의 개념인 ‘스페이스 오프’를 가져온다. 감독이 강조함으로써 후경처리된 것(스페이스 오프된 것, 가부장제에서 후경처리된 것)을 다시 읽어냄으로써(프레임 안에서 프레임을 근거로 프레임 바깥(잉여(excess)의 지점, 대안적 사회 등)을 추론함으로써) 젠더가 해체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적 주체가 행위성을 갖고 기존의 (사회적)재현과 다른 자기재현을 내놓음으로써, 젠더를 해체(재구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마지막 명제가 도출된다. “젠더의 구성은 젠더의 해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세번째 명제는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생략했습니다ㅠㅠ)버틀러, <우연적 토대> 버틀러의 「우연적 토대」는 보편성, 보편성을 전제한 주체의 개념, 보편성을 확립하려는 비평가의 시도를 비판한다. 특정한 보편성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권력을 가진 입장, 개념을 대변하며 배제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여성, 야만, 식민지, 시골, 재생산을 주변화함으로써 남성, 문명, 제국, 도시, 노동을 중심화하고, 보편화한다. 대상을 멸시해서 주체를 형성한다. ‘내부를 구성하는 외부’를 만들어 내부를 형성하고(이 둘 모두 토대(보편적 기반)위에서 형성됨), 이를 통해 배제를 정당화한다. 또한 보편성을 가정하는 것은 미래의 주장을 걸어 닫는 행위이다. 대신, ‘보편성’이라는 용어가 “영원히 열린 채로, 영원히 논쟁적으로, 영원히 우연적으로 남아있어야만(p.5)”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그것의 토대주의적 무게를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버틀러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의 주체 형성에 대한 논의까지 나아간다. 여성들의 연대는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보편적인 여성(대문자 여성)을 가정하는 것은 반드시 이와는 다른 분화파를 만들어내며, ‘정체성’이 페미니즘운동이 결집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정체성 항목은 늘 “규범적이었고, 그런 만큼 배제적(p.12)”이기 때문이다. 대신해 ‘여성’ 정체성으로 통합될 수 없는 것을, 차이의 영역으로 전제한다면, ‘여성’이라는 용어 자체가 “영구적인 개방성과 재의미화 가능성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가리키는 용어가 고정적이지 않을 때, 용어의 재배치, 재의미화, 재구성이 가능해진다. ‘주체’라는 용어를 해체하자는 것은 주체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재의미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자는 주장이다. 또한 보편성을 확립하려는 비평가는 특정한 방식으로 입장지어져 있다. 자신을 둘러싼 권력관계,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보편성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강력하고 권력적인 개념적 실천(p.4)”이므로, 토대를 폐지하고 남겨두는 것은, “반토대주의라는 이름 하에 모종의 입장을 지키는 것”이 된다. 대신해 보편성(토대)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이러한 시도가 누구의 욕망을 반영하고, 누구에게 이로운지, 즉 누구의 권력관계와 이해관계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태그 목록답변 댓글 [1] 댓글작성자(*)비밀번호(*)자동등록방지(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내용(*) 댓글 등록 더보기이전[3주차 쪽글] 부정된 사랑과 부정된 상실단감2018-10-19-2주차 복습jj2018-10-19다음[3주차 쪽글] 이성애의 정치경제?쿠다2018-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