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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주차 쪽글] 각인으로 새겨진 몸 주체2020-04-13 18: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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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으로 새겨진 몸 주체


뫼비우스 띠의 바깥을 뒤따라가다 보면 이 띠의 바깥은 표면의 특정한 지점에서 어느 순간 자취도 남기지 않은 채 곧장 내부로 이어진다. 깊이, 혹은 그보다 깊이의 효과는 이렇게 파악해볼 때 평면적인 차원을 조작하고 순환시키고 각인함으로써 그야말로 산출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원론을 해체하는 적절한 은유다. (278-9쪽)



  페미니즘이 주적으로 삼는 이론은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서사로 기능하는 서구 형이상학과 정신분석학이다. 서구 형이상학은 이분법에 근거하여 우월한 것/비천한 것, 정신/몸에 대한 위계를 만들었다. 정신분석학은 남성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서사를 구축하며, 아이가 백인 서구 남성이 주체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게 된다. 두 이론에 근거하여 철학사는 우월한 정신을 가진 서구 남성 ‘주체’만들기에 복무하게 된다. 그러나 페미니즘 이론은 앞의 두 이론이 가진 남성중심성과 이분법에 근거한 세계 분할 방식을 비판해왔다. 이러한 페미니즘의 작업에 기대며 그로스는 몸을 통한 페미니즘 이론화를 시도하기 위하여 몸이라는 사회적 표면에의 ‘각인’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각인’은 몸에 새겨지는 법·지식·규범이며 이를 통해서 주체는 사회와 관계 맺는다. 

  우선, 니체에게 몸은 권력의지의 자원이며 장소이다. “니체에게 지식과 권력은 몸의 활동 결과이자 자기 확장과 자기 극복의 결과다. 권력의지는 세포, 생체 조직, 장기의 차원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고 스스로를 극복하려는 투쟁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곳에서 저차원적 질서인 신체 기능은 고차원적 질서인 신체 과정과 활동에 의해 종속되고 구속받는다.(290)” 몸 속 기능간의 힘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이 생산해내는 지식은 몸의 활동에 의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니체에 다르면 인간의 지식의 역사성은 몸의 역사성의 결과이다. 권력의지는 기억을 제도화하는 ‘각인’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고통이야말로 기억을 제도화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어휘”이다. “따라서 기억은 몸의 통증과 고통으로부터 형성되어 나온다”(311) 로마법을 설명하면서 니체는 채무자-채권자 관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교환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여기서 “도덕성과 정의는 물물교환과 잔인성에서 공통된 계보를 공유한다. 기억, 사회적인 역사, 문화적인 일관성 등은 육신에 낙인찍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316) 니체는 법과 제도가 생성되는 과정에서의 몸의 우선성을 통해 근대의 주체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게 한다.

  푸코는 니체가 지적한 몸에 대한 처벌을 통한 몸의 각인에 대한 갈래를 공유한다. 푸코는 역사적인 사건과 변형이 치른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비용에 관심을 가지며, 이런 비용들이 권력 체계에 어떻게 의존하고 어떤 식으로 투자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다.(343) 니체의 계보학의 문제의식의 영향을 받은 푸코는 “역사에 의해 완전히 낙인찍힌 몸과 역사에 의한 몸의 파괴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344)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푸코에게 “몸은 권력의 대상이며 표정이자 도구이며, 권력을 작동시키는 가장 거대한 투자의 장이며, 자신에게 위험한 물질성을 권력이 통제하기 위해 투쟁에 걸어둔 판돈이다.”(344) 그러한 예는 가장 대표적으로 <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푸코는 몸이 처벌의 대상이자 스펙타클로 등장하는 시기를 거쳐 학교나 감옥을 통해서 몸이 특정한 반복성을 통해 규율화되는 서로 다른 시기를 비교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권력은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 몸의 행태와 몸이 타자와 맺는 상호작용을 조사하고 관리하고 측정한다.”는 것이다.(351) 이 점에서 푸코와 니체의 “몸”과 “각인”은 서로 다른 길로 나뉜다. 니체는 몸이 가진 권력의 의지가 지식을 생산한다고 했지만 푸코에게서 몸은 “저항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이런 몸의 내적인 특질과 힘은 권력의 기능과 거의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345) 더 나아가 푸코는 몸에 새겨지는 권력의 각인을 통해 ‘섹슈얼리티’라는 효과를 확인한다. “권력은 섹슈얼리티의 구성과 배치를 통해 몸과 쾌락과 에너지를 장악할 수 있다”(361) 푸코의 주장대로 권력이 몸에 대한 지식을 통해 규범이 되었다면 양성성의 젠더규범은 권력이 만들어 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신분석학과 형이상학기 전제하고 있는 섹슈얼리티의 실재를 폭로할 수 있게 된다. 몸에 대한 법·섹슈얼리티·규범의 실체란 반복적인 각인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몸은 일련의 표면, 에너지, 힘, 연결 모드, 불연속적인 과정, 장기, 흐름, 질료로 이해될 수 있다. (…) 다른 사물들과 다른 몸들과 작동 중인 일련의 연계 장치이자 연결이다. (…) 여기서 몸은 의미화 작용의 동력학 혹은 차라리 정치학으로 인정되어야 한다.”(286-7쪽)


  위와 같은 그로스의 몸에 대한 접근은 니체와 푸코를 통해 반복적인 권력의 각인으로서 신체의 지식과 진리가 생성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정적인 것이 아니라 흐르고 유동하며 불안전한 몸에서부터 지식과 권력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니체와 푸코의 논의는 유의미한 것으로 참조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의 이론은 페미니즘 이론에서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다. 푸코는 어디까지나 남성 주체에 몸에 새겨지고 계획되는 주체화 과정을 다뤘기 때문이다. 그의 논의에는 여성의 신체는 다뤄진 적이 없다. 니체 또한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그의 철학이 다루는 몸은 일반으로서의 몸일 뿐이다. 위의 인용에 나타난 “연계 장치이자 연결”이라는 몸에 대한 철학은 이후 들뢰즈-가타리의 ‘여성 되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추후에 더 정리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급히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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