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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주차 쪽글] 결국은 카메라 옵스큐라: 빛으로 쓴 인종차별 by 조나단 벨러2019-11-29 13: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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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카메라 옵스큐라:  빛으로 쓴 인종차별 by 조나단 벨러

 

골드스비는 "19세기에 사용된 광학 장치는 문화적 진공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철학적, 과학적, 미적 담론이 기계적 기술, 제도적 요구 사항, 사회적 요구 사항과 겹치는 교차점을 반영하는 '개념적 구조'라고 상기시켜 주는 조나단 크래리의 <관찰자의 기술>을 인용하며사진 비는 또한 이상적인 뷰어, 즉 관찰 대상을 전제로 하며, 그 문화적 특권은 카메라가 세상을 인간의 인식에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부터 유추될 수 있다. 따라서, 린치 사진과 그들의 사회적 효과를 고려할 때, 우리는 인종 살인 사건의 투명하고 자명한 문서라기보다는 하나의 인공물로서 접근해야 한다. 실제로 린치 사진은 백인 인종차별주의의 치명적인 작동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 또한 이 이미지는 인종 폭력의 관행이 시각 자체의 경험과 의미를 키우는 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기록한다" 고 주장한다.

 

사진은 진공 상태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스티븐 히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장치dispositif, 사진과 같은 사회적이고 기술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종 관계, 즉 인종차별주의의 형태가 "시각sight의 의미"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플랫폼에 새겨져 있고, 따라서 사진 자체에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리엇 제이콥스의 <린다 브렌트 이야기: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에서 제이콥스는 상상할 수 없는 물리적인 압력 하에 있으면서, 널판지에 작은 구멍을 뚫어 그 구멍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말하자면, 제이콥스는 식민주의, 정치경제, 인종주의, 노예 제도 및 백인에게 흑인을 소지품으로 보유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법의 결합에 의해 카메라에 갇혀 있었. 이 사회적, 기술적 구조에서, 그녀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아이들을 관찰했지만, 그들을 만질 수도, 말할 수도, 심지어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릴 수도 없었다. 그들은 백인 우월주의 아래 흑인들이 성장하는 것의 모든 고역을 직면했다.

사회적 수단을 통해 제이콥스는 시야에서 숨겨져 있지만 널판지의 핀홀을 통해 세계를 관찰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기록 장치로 변환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핀홀의 반대편에 있는 선택권-즉 가시성과 노예제도-이 주어진 건 아니지만 그녀는 사회적이고 그리고 거의 물리적인 죽음-감금-의 형식을 선택했다. 제이콥스를 조리개 한쪽의 순수한 관찰자로,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순수한 대상이 있는 것으로 가능한 가깝게 환원한다면, 이 끔찍한 조합은- 카메라에 들어있는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의 박탈, 그 자체가 특정 한 시각적scopic 체제의 발전에 의존하는 박탈을 필요로 한다. 한쪽에는 보이지 않는 관찰자, 그리고 다른 쪽에는 비체적인 대상. 이 시각적 체제는 우연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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