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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2019-03-29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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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일본에서 여성이 신자유주의와 함께 변화해온 양상을 그린다. 책에서 우에노 지즈코는 신자유주의와 여성 고용, 가족, 저출산, 돌봄 노동에 따른 여아선호등을 날카로운 분석으로 짚어낸다. 책을 읽으면서, 일본은 한국과 다르기에 책을 읽는 것이 의미가 없으리라는 우려가 있었지만(이를 테면 현재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여성으로서 살아온 삶은 전체 국가를 떠나, 세계역사와 신자유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동아시아 국가로서 여성-가족-사회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많이 해결되었다. 이를테면 심각한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비혼모가 늘지 않는 이유 말이다. '여성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주면 정자은행에 가서라도 아이를 가져 기를 '이라는 분석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졌었으나, 지즈코의 분석을 따라가면 그것의 구조는 분명해졌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서 여성이 겪은 차별보다 내게 충격이었던 것은, 깊숙한 곳에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이것으로 세상을 정당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고, 페미니즘을 시작하면서 자신 또한 차별의 당사자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엘리트주의-능력주의에 기인한 차별에는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이다. 빈부차가 학력차를 낳는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계속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라고, 그렇게 말할 있었을까? 학력 또한 그저 개인의 취향이나 재능의 영역 아닌가. 내가 공부한 것이 쓰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상의 보상을 요구할 수는 없음에도 항상 노력에 대한 보상이란 명목으로 능력주의를 지지한 것이 부끄러웠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을 여성이 아니면 된다는 말로 무마하는 것이야말로 무의미한 일이다. 결혼을 하지 않을 . 아이를 낳지 않을 . 누군가에게 결혼 하라고, 혹은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것이 무례이듯 결혼하지 말고 아이를 낳지 않으라고 하는 것은 또한 무례이다. 그것이 여성이 해방되는 길이라고 여겨왔지만 그것은 현실의 여성을 지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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