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폭력 규약의 해제

해제의 목적

 규약의 해당 조항에 상응하는 해제는 아래에 첨부한다. 이는 규약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있어서 자의적인 해석을 제한하기 위함이다. 규약의 조항들은 성폭력 사건에 적용하기에 용이하도록 최대한 간결한 방향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자의적 해석으로 본 규약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조항을 오용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본 규약의 제정 취지와 각 조항별 의미를 보다 명확하고 상세하게 해설하는 해제를 제정함으로써 규약에 대한 의미 왜곡과 조항의 오용을 막고자한다. 따라서 규약의 적용 시 해석상의 이견으로 논쟁이 발생할 경우 해제의 관련 조항 해석이 최우선적 권위를 부여받는다.

제1조 성폭력의 정의에 대한 해제

 서교연은 연구실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로 다루고자 한다. 성폭력은 공동체 성원들이 공유하는 규범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성(sex, gender, sexuality)은 위계화되어 있다. 성폭력은 모든 성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다. 성폭력 사건은 서교연 내의 이러한 위계가 존재함을 방증한다. 서교연은 사건 해결의 주체로서 피해자의 권리와 가해자의 의무가 이행될 수 있도록 지원함과 동시에 연구실 내부의 성평등 문화를 점검하고 개선할 의무 또한 지닌다.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물리적 혹은 정신적인 상처를 입힌다. 이러한 상처는 피해자를 위축시켜 피해자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 성폭력은 피해자가 사건 이전에 유지해오던 활동과 관계 등을 위축시킴으로써 피해자 스스로 꾸려오던 일상과 활동 전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본 규약이 다루고자 하는 성폭력은 특정한 공간과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연구실은 피해자에게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 된다. 피해자에게 연구실은 더 이상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이 아니다. 성폭력 사건 이후 연구실은 피해자가 동등한 구성원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적대적인 환경으로 바뀐다. 

 성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낮은 단계의 행위에서 시작되어 그 정도를 높여가는 와중에 발생한다. 성폭력은 발생하기까지의 그라데이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 이렇게 성폭력 문화가 짙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성폭력 사건은 여지없이 발생한다.

  따라서 성폭력의 발생 이전에 성폭력 예방을 위해 공동체 내 성평등 문화를 점검하고 개선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연구실의 구성원들이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낮은 단계의 성차별적(성폭력) 언사와 행위에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가 중요하다. 이는 조직 내 연성규범(soft law)을 통해 점검할 수 있다. 연성규범이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일정한 간접적 효력을 지닌 규범을 말한다.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연성 규범이 형성되었을 경우, 문제 상황에 대해 누구나 개입하고 문제제기할 수 있게 된다. 구성원들이 성평등한 문화를 공유한다면, 성폭력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2조 규약의 적용 범위에 대한 해제

 규약은 회원과 세미나 회원 그리고 외부 단체에 소속되었을지라도 서교연에서 진행되는 강의 및 행사 단위에도 적용한다. 강의 기간에 해당 강사 및 수강자로 인해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서교연의 반성폭력 규약에 의거하여 처리한다. 단, 1회성 강의 및 행사의 경우 사건의 경중을 고려하여 개입할 수 있다.

제3조 성평등 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해제

 위원회는 서교연이 지향하는 성평등 문화를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연구실 내부의 연성규범을 점검하고, 개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위원회는 조직 내의 성평등 문화를 만들고 유지시킬 수 있는 교육이나 행사를 제안할 수 있다.

제4조 사건의 신고에 대한 해제

 성폭력 사건의 최초 접수는 서교연의 대표 혹은 성평등 위원회의 위원장이 받는다. 위원회는 성폭력 사건 접수를 위하여 상시 접수창구를 운영한다. 신고 방법은 위원회 메일이나 회원을 통해 접수 한다. 접수창구에 해당하는 이메일 계정의 관리는 서교연 대표와 위원장이 공동으로 관리한다. 성폭력 사건 접수창구는 서교연의 모든 구성원들이 알 수 있도록, 홈페이지와 연구실 공간에 게시한다. 

 성폭력 사건의 제3자 또는 목격자의 경우 피해자와 협의하여 사건을 조직에 접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3자 혹은 목격자가 피해당사자의 동의 없이 사건을 접수한 경우, 사건을 접수받은 사람은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사건을 접수할 수 있도록 신고자에게 접수 절차를 이해시킨다. 

 연구실 대표 또는 위원장이 아닌 제3자에게 사건이 접수된 경우, 최초 접수를 받은 사람은 연구실 대표와 위원장에게 신고 받은 사실을 공유해야 한다. 이에 대해 대표는 사건을 전달받은 즉시 사건의 성격을 파악하여 대책위를 조직해야 한다. 대표와 위원장·대책위는 신고 사실에 대해 비밀을 유지한다. 

제6조 피해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해제

 대책위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피해자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권리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무를 가진다. 이는 피해자가 사건 해석의 권리만을 가진 자로 취급되어 사건 해결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사건에 대한 요구안을 제시하는 등의 해결의지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반성폭력 규약에서 기대하는 피해자의 의무는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다. 피해자가 사건을 서교연에 신고한 후 대책위가 만들어지는 경우, 성폭력 사건은 단순히 개개인간의 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된다. 동시에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조치와 대책위의 구성 등에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권리가 있으며, 사건의 발생·조사·해결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임함으로써 자신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스스로 능동적인 해결자가 되어 자신의 침해받은 권리를 회복할 역량을 가진다. 그 결과 성폭력 사건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사건 해결 과정에서의 적극성을 담보함으로써 사건 이후의 자신의 삶을 새롭게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제8조 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의 독립성에 대한 해제

 대책위에서 조사 기간에 작성한 사실 조사 보고서는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 첫 번째 참고자료로서의 위상을 가진다. 대책위의 활동은 피해자와의 긴밀한 협상 속에서 진행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위를 정하는 데에 있어서 독점적인 해석권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서교연의 운영회의와 성평등위원회는 대책위에서 제시하는 사건의 공개 수위, 사건에 대한 보상과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위 등을 신뢰하며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제12조 사건의 공개에 대한 해제

  사건을 공개하는 것은 사건 해결을 위한 조치이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적인 의미가 우선이 아니다. 사건의 조사 과정 및 해결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피드백이 필요할 때, 피해자는 대책위와의 논의를 통해 사건의 일부분을 공개할 수 있다. 가해자가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고 회피하거나 사건의 장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인지할 경우, 사건을 공개하는 방법을 통해 가해자를 사건해결과정에 임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처럼 사건의 공개, 이를테면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한다거나 사건의 경위와 해결과정 등을 공개하려는 이유에 따라서 징계적인 성격과 무관할 수 있다.

  가해자가 사건의 해결 과정을 회피하거나 징계안에 대하여 안일하게 응하는 경우, 대책위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 가해자가 소속된 다른 단체에 알릴 수 있다. 이는 공식적인 징계안의 실현이라기보다는 가해자가 사건 해결과정으로 돌아와 자신의 의무를 다하게 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피해자가 제시하는 징계안 중에 가해자가 활동하는 외부 단체에 성폭력 사건을 고지하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사건이 일부분 공개되었다고 해서 사건이 해결되었다거나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고 섣불리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사건의 해결은 오로지 대책위와 피해자가 공감하는 가운데에서만 온전히 이뤄질 수 있다.

제15조 2차 가해와 2차 피해에 대한 해제

 2차 피해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잘못된 성 통념으로 인해 피해자가 받는 고통을 총칭한다. 2차 피해를 일으키는 2차 가해는,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성폭력 사건을 공동체의 문제로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된다. 2차 가해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 사건의 축소·은폐·왜곡을 종용하는 행위 등을 포함하며, 이러한 행위들은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잘못된 성 통념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대책위의 적극적인 조치의 대상이 된다.

 대책위는 공개적인 장소 혹은 발언에 의한 2차 가해뿐만 아니라 사적인 자리나 대화에서 일어난 2차 가해라 할지라도, 대책위가 2차 가해를 인지하고 2차 피해의 심각성이 공유되었을 경우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제16조 회원의 의무에 대한 해제

 모든 회원은 위원회, 대책위 등의 역할이 주어졌을 때, 활동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한다. 성폭력 사건이 공개된 경우, 해당 사건에 대한 문의가 있을 시 정확한 사건 내용이 공유되도록 노력한다.

 모든 회원은 서교연에서 발생한 성폭력사건에 대하여 회원 이외의 인물로부터 또는 서교연 바깥의 단체로부터 사건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 사건에 대한 축소·왜곡·은폐·부인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피해자에게 다시금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회원은 공개된 사건에 대하여 공유해야 하며 전 과정과 사건의 경위를 숙지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