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정치철학] 정정훈 선생님 인터뷰 (후반부)

 

 

 

(전반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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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니까 정치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우리 현실에 대한 고민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들리는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세월호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던 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가 OECD 국가이고 G20인데 아직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느냐”, 혹은 “이렇게 어린 학생들이 희생되어야 하느냐”, 그리고 “이렇게 부정부패가 많았느냐” 이런 것이겠죠.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가 받은 충격은, 세월호가 침몰됐고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전국민이 지켜 보면서도 단 한 명도 제대로 구조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나온 질문이 ‘이게 나라냐’라는 것이죠. 사실 이 질문만큼 정치철학적인 질문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게 나라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이미 ‘국가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국가가 모든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이에요.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실 국가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비롯한 권리들을 국가가 지켜야 한다는 사고는 어찌 보면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특정한 사람들이 더 많은 권리를 누려야 하고, 특정한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더 보호해야 한다는 사고가 꽤 오랫동안 지배적이었어요. 다른 한편 국가가 국가 성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도 많은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국가라면 응당 이러해야 한다는 데에 대한 단일한 입장은 사실 없습니다. 이는 언제나 논쟁적인 사안이었고, 그 논쟁 자체가 일종의 정치입니다. 그리고 ‘국가란 이래야 한다’고 하는 주장들을 현실에서 관철시켜 나가는 행위가 정치인 것이죠. 세월호의 문제는 그래서 정치적인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따지는 행위 자체가 정치이고,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행동들이 정치이죠. 물론 정치철학 그 자체가 세월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정치철학을 공부함으로서 이런 국가의 역할이라든가 시민적 행위의 의미들에 대해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자원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최근의 정치철학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많이 사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 정세에서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주의는 중요한 의제인 것 같구요.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이 궁금합니다.

 

요즘 랑시에르나 아감벤, 바디우, 지젝, 발리바르 등과 같은 학자들의 작업을 정치철학과 관련하여 많이 읽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제 입장을 물어보시면… 저는 물론 민주주의자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라는 것이 사실 그렇게 명확한 정치질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주체성의 문제이기도 해요. 법 앞의 평등이라든가, 보통 선거, 입헌주의 같은 것들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제도일 겁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demo-cracy, 즉 인민이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인민이 누구를 통치하는가? 자기 자신에 대한 통치, 즉 인민에 대한 인민의 통치인 것이죠. 그러니까 ‘자기 통치’라는 문제는 민주주의에서 주체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죠.

 

 

 

 

민주주의는 인민이 스스로 통치하는 제도인데, 이는 인민이 스스로를 통치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역사에서는 민주적 제도가 반민주적 결과를 낳기도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박근혜를 굉장히 욕하지만 박근혜는 사실 민주주의적 제도인 보통선거에 의해 당선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사상 최악의 독재자라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보통선거에 의해 당선된 정치인이죠. 그러니까 인민의 다수가 내린 결정 자체가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예요. 이 역설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게 현대 정치철학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서양 정치철학의 역사 전체가 이 대중이라는 존재와 정치의 관계를 사고하면서 던질 수밖에 없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1.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 같은 경우 최근에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랑시에르 같은 사람은 민주주의를 어떤 제도 이전에 ‘사건’으로 봅니다. 인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집단적으로 봉기하는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랑시에르에게 대의제 같은 제도는 사실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랑시에르도 제도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도에는 민주주의의 흔적이 담겨 있는 제도와 그렇지 않은 제도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러나 어쨌든 랑시에르는 제도 자체보다는 제도에 모든 이의 평등을 기입해 넣는 인민들의 봉기 내지는 행동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민주주의를 이렇게 봉기, 직접행동, 즉 사건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민주적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되어야 하고 실현되어야 하는 질서니까요. 그런데 사건이란 항상 이런 일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적인 어떤 것이잖아요. 랑시에르는 일상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고민하는 데에 유의미한 자원들을 제공해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제도의 문제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도들이 우리 일상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민주적 제도란 민주적 주체 없이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제도가 완벽하게 설계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통치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없으면 그 제도는 오히려 역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더욱이 민주적 제도 그 자체가 민주적 주체를 바로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민주주의적 주체들은 만들어질까, 그리고 그것과 제도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이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강의를 들으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1. 마지막으로 아직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너무 어려울까봐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정치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곧바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과 모순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대단한 통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시야는 스스로가 지난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얻어가는 것이겠죠. 다만 그런 공부를 함에 있어서 익숙하지 않은 논리들이나 개념들 때문에 좌절하거나 실패하는 일들을 최소화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낯선 나라에 여행을 가면, 어디에 가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모르잖아요. 또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외국어로 쓰여 있는 메뉴를 보면 그게 무슨 맛인지도 전혀 모르고요. 낯선 땅을 여행할 때 사전 정보 없이, 또는 지도 없이 몸으로 부딪쳐 직접 알려고 하면 고생길만 됩니다. 이 강의는 정치철학이라는 낯선 땅에 대한 일종의 지도이자 여행정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서 가이드 역할을 맡는 사람이 될 겁니다. 이 지역의 특산물은 뭐고, 이 요리는 어떤 맛이고, 대표적 유적은 무엇이며 그 유래는 어떻다는 것을 알려드리듯 정치철학자들의 생각과 그 역사적 배경, 논쟁의 맥락, 이후 정치사상과의 연결 등을 설명할 겁니다.

 

 

 

가이드를 따라 정치철학이라는 낯선 땅을 한 번 훑어보시면 이후에 자기 스스로 여행을 더 잘 할 수 있는 수단들을 얻지 않겠어요? 이 강의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일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어렵게 진행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학자들 이름도 못 들어봤다 하는 분들에 맞춰서 강의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후로 이런 분들이 정치철학에 대한 해설서들이나 원전을 읽어갈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정정훈 선생님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입니다. 대학에서는 문화연구를 전공하였지만, 이후 줄곧 정치철학과 맑스주의를 공부해 왔습니다.

지은 책으로 <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 <인권과 인권들>(제 8회 일곡유인호학술상 수상작)이 있고, <세월호의 사회과학>, <국가를 생각하다>, <코뮨주의선언>,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정치사회편>, 등을 함께 썼습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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